삼성 휴대전화가 글로벌 시장 곳곳에서 독보적 1위 노키아에 맞서 대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휴대전화 시장에 진출한 지 11년 만인 지난해 7월 누적 판매 1억5000만 대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어 연간 시장 점유율에서도 1위를 기록하며 미국 최고 휴대전화 브랜드로 등극했다.
미국 휴대전화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AT&T, 버라이즌, 스프린트, T-모바일(Mobile) 등 4대 통신 사업자를 비롯해 20여 개의 크고 작은 통신 사업자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통신 사업자들과 함께 인스팅트, 비홀드, 이터너티, 옴니아 등 다양한 신규 풀터치스크린폰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삼성 휴대전화는 캐나다 시장에서 지난해 연간 점유율 약 25%로 판매(출하)량 1위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TIA 2009’에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인 신종균 부사장은 “지난해 하반기 북미 휴대전화 시장에서 선두에 올라선 데 이어 올해에는 시장 점유율 25% 이상으로 확고부동한 1위를 굳히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대표적인 프리미엄 휴대전화 시장인 서유럽에서도 삼성전자의 기세가 무섭다. 최근 발표된 GfK 1월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서유럽 시장에서 25%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서유럽에서 팔리고 있는 휴대전화 4대 중 1대가 삼성 폰인 셈이다. 서유럽에서 삼성전자 휴대전화 점유율은 3위와 4위 업체 점유율을 합친 것과 비슷할 정도로 후발업체와 큰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 지난해 1월 삼성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은 19.3%에 불과했으나 불과 1년 만에 26.8%로 상승했다. 반면 노키아는 점유율이 9%포인트가 넘게 하락했다. 영국은 노키아 등이 유럽 시장의 보루로 삼는 곳. 이 때문에 삼성의 영국 시장 공략은 곧 유럽에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프랑스는 5년 연속 점유율 1위에 도전하고 있는 삼성 휴대전화의 독무대다. 이러한 성공을 기반으로 삼성전자 프랑스 법인은 2010년에 프랑스 100대 대기업에 진입할 것이라는 당찬 계획을 세웠다. 2010년까지 휴대전화와 TV뿐 아니라 삼성이 만드는 모든 IT제품에서 1위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1988년 설립 당시 매출 2000만달러에서 2008년 36억달러로 성장했으니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김석필 삼성전자 프랑스법인장은 “삼성을 프랑스 국민들의 가슴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명품 브랜드로 만들겠다”며 “현지인들이 ‘미래를 보려면 삼성을 먼저 봐라’는 말을 할 때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프리미엄·중저가 전략 조화
삼성전자가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안방 격인 북미 지역과 서유럽에서 이들을 제친 것은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고가 제품, 화소 수가 높은 카메라를 채용한 제품, 터치폰 등 혁신적인 기능을 담은 제품 위주로 마케팅을 전개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저가 제품 위주의 물량 공세는 철저히 멀리했지만 그렇다고 프리미엄 제품만 공급한 것은 아니다. 영국 등 유럽과 북미 시장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고가품과 대중제품으로 양극화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기능을 강조하면서 중저가 시장을 파고 든 전략도 구사했다. 무엇보다 철저한 현지화를 통한 삼성의 글로벌 경영이 서서히 세계 시장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성공 요인Ⅰ 철저한 현지화 통한 마케팅
1996년 10월 설립된 삼성전자 통신법인(STA: Samsung Telecommunication America)은 미국 시장 1위를 이끌어 낸 헤드쿼터다. STA는 주재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 현지인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 주재원은 5% 미만이다. 대부분의 권한도 이들에게 일임돼 있다. 철저하게 현지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삼성전자 통신법인의 빌 오글 CMO(Chief Marketing Officer)는 “앞으로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삼성 휴대전화와 소비자들과의 교감을 더욱 견고히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프랑스 법인 역시 한국인 직원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전체 임직원 중 10여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프랑스 현지인이다. 축구선수 지단이나 프랑스의 유명 가수인 크리스토퍼마에, 프랑스의 최고 요리사 등 유명인들에게 삼성전자의 휴대전화를 안긴 것도 현지 직원들의 명품 마케팅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석필 법인장은 “기본적으로 제품 경쟁력을 갖고 있는 데다, 프랑스 법인에 근무하는 현지 프랑스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도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지화된 마케팅 전략은 각 지역별로 특화돼 있다. STA는 스포츠,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를 이용한 현지 특화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쳐 삼성 휴대전화의 미국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큰 역할을 했다. 미국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 나스카(NASCAR)의 텍사스 경주에 ‘나스카 삼성 500’을 단독 후원하고 있는 것도 한 예다. 나스카는 매년 미국 인구의 약 28%인 8500만 명이 시청하고 경기마다 찾아오는 관람 인파만 20만 명에 이르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다. 나스카 팬의 70% 이상이 나스카 후원 브랜드로 제품을 바꿀 만큼 마케팅 효과가 뛰어나다.
이외에도 매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통신사와 연계한 뮤직 페스티벌 콘서트를 비롯해 미국 인기 드라마·토크쇼에 대한 PPL 마케팅(<오프라윈프리 쇼> 등), UCC 등을 통한 ‘바이럴 마케팅(입소문 마케팅)’ 등 다양한 마케팅이 진행 중이다.
캐나다에서는 동계 올림픽, 아이스하키 등 스포츠 관련 마케팅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아이스하키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스포츠이자 최고 인기종목이다. 삼성은 캐나다 아이스하키 리그인 ‘NCL(National Canada League)’ 등을 후원하는 등 각종 아이스하키 관련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아이스하키의 꽃이라 할 수 있는 NHL(National Hockey League) 관련 마케팅도 준비 중이다.
영국에서는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축구팀 첼시의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스포츠 마케팅 활동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삼성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려는 노력은 집요하다. 2006년 첼시가 유니폼을 바꿀 때의 에피소드 한 토막. 2005년 첼시와 9500만달러(당시 950억원)에 5년간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맺은 삼성전자는 ‘삼성’ 로고를 최대한 위로 끌어올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첼시는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 기존 형태를 고집했다. 6개월간의 지루한 싸움 끝에 삼성은 로고를 1.1cm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첼시 마케팅’을 통해 제품 매출·브랜드 가치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첼시를 후원한 지 3년째인 지난 2007년 삼성전자의 유럽 매출이 2004년에 비해 100억달러가 늘었다. 특히 휴대전화 매출은 시장이 커지는 속도의 4배에 가까운 판매 성장률을 기록했다.
삼성 휴대전화가 프랑스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꿰찬 것도 국가적 특성을 살린 ‘문화 마케팅’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첼시 등 ‘스포츠’를 통해 성공을 거뒀다면, 프랑스에서는 국민들이 가장 자긍심을 갖고 있는 주제인 ‘문화’에 집중한 것이다.
삼성은 2007년부터 요리와 미술, 패션과 음악에 이르는 ‘문화’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마케팅 활동을 실시했다. 프랑스인들의 문화적 자부심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센터인 퐁피두센터에 삼성 모니터를, 로댕 박물관에 삼성의 보르도TV를 설치하는 등 문화와 연계한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김석필 법인장은 “문화적 자부심이 크고, 제품에 대한 까다로운 시각, 풍부한 감성을 가진 프랑스 국민들이 유럽 업체보다 삼성전자 휴대전화에 더 높은 점수를 준 것은 문화 마케팅의 효과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성공 요인Ⅱ 남보다 앞선 기술, 디자인
삼성 휴대전화의 성공의 이면에는 현지 특화형 휴대전화의 끊임없는 개발과 적극적인 현지 마케팅 활동이 숨어 있다. 물론 최고 수준의 기술과 디자인이 바탕이 됐다. 삼성전자의 ‘블랙잭’과 ‘터치위즈’는 미국과 프랑스에서 휴대전화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2006년 말 내놓은 ‘블랙잭’은 미국 시장의 기반을 다진 제품이다. 미국 최대 사업자인 AT&T를 통해 선보인 스마트폰인 블랙잭 시리즈는 250만 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해에는 후속 제품인 에픽스(Epix)를 선보이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버라이즌에 내 놓은 ‘글라이드’는 지난해 5월 출시 이후 현재까지 약 90만 대 이상 판매돼 현재 밀리언셀러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해 출시한 ‘터치위즈(F480)’는 스위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엄청난 인기를 모으며 누적 판매량이 최근 500만 대를 돌파했다. 터치위즈폰 판매 호조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지난해 풀터치스크린폰 판매량이 1000만 대를 넘어섰다. 이는 약 3700만 대로 추정되는 전 세계 풀터치스크린폰 시장의 4분의 1 이상에 해당한다. ‘터치위즈폰’은 마치 카드를 연상시키는 슬림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터치위즈폰은 글로벌 휴대전화 트렌드의 3가지 요소라 할 수 있는 풀터치스크린, 고화소 카메라, 미니멀 디자인을 모두 만족시킨 것이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성공 요인Ⅲ 친환경·체험 마케팅으로 인지도 확대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에서 전개하고 있는 친환경 활동, 체험 마케팅 등도 성공 원동력이 됐다. 지난해부터 미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삼성 폐휴대전화 회수 프로그램(Samsung Mobile Take-Back Program)’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삼성 휴대전화 고객이 폐기를 원할 경우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무료우표 라벨을 출력, 휴대전화를 발송하면 텍사스의 삼성 폐휴대전화센터로 자동 수거된다. 삼성은 이 프로그램을 타사 휴대전화 소비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이렇게 수거된 폐휴대전화는 친환경적으로 재활용 처리돼 미국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또 고객의 생활 문화에 파고드는 ‘체험 마케팅’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2007년부터 뉴욕, LA, 달라스 등 미국 내 주요 국제공항에 설치된 ‘삼성 모바일 차징 스테이션’은 현지 시민들과 공항 이용객에게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삼성 휴대전화는 지난 3월 미국 브랜드 조사기관 브랜드키즈(Brand keys)가 실시한 소비자 조사 결과 세계 휴대전화 업체 중 유일하게 8년 연속 고객 충성도 1위 브랜드로 선정된 바 있다. 전 세계 휴대전화 업체 가운데 8년 연속 선정된 브랜드는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가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브랜드인가를 증명한 셈이다.
신종균 부사장은 “아무리 좋은 제품과 서비스 등을 가진 회사라도 고객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그 기업은 죽은 기업”이라며 “삼성전자 성공의 가장 큰 원동력은 현지 소비자들의 큰 호응을 끌어낸 차별화된 마케팅에 기인한다”고 말했다.